튀니지 중부, 메마른 평원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돌기둥들이 솟아오릅니다. 고대의 이름은 수페툴라. 지금은 스베이틀라라 불리는 이 도시는, 멀리서 보면 그저 평원에 남은 폐허 같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서로 다른 세 시대가 같은 땅 위에 겹쳐 있는 보기 드문 장소입니다.
세 신을 위한 세 채의 신전
스베이틀라의 얼굴은 돌바닥 포럼 안쪽에 나란히 선 세 신전입니다. 로마의 도시라면 보통 최고신 유피테르와 유노, 미네르바를 하나의 신전, 카피톨리움에 함께 모십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세 신에게 저마다 독립된 집을 지어 주었습니다. 세 채가 옆으로 어깨를 맞대고 선 광경은 로마 세계 어디서도 흔치 않습니다.
왜 하필 이런 구성을 택했는지, 확실한 답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 앞에 서 보면, 세 신전이 만들어 내는 대칭과 균형이 이 도시가 스스로에게 품었던 자부심의 크기를 조용히 말해 주는 듯합니다.
139년, 황제에게 바친 문
포럼으로 드는 입구에는 서기 139년 무렵에 세운 문이 서 있습니다. 당시의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에게 바친 개선문입니다. 문을 지나 세 신전과 마주하는 일련의 풍경은, 도시가 방문객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문과 신전은 우연히 놓인 것이 아니라, 걸어 들어오는 사람의 시선을 계산해 배치되었습니다.
이 도시를 살찌운 것은 튀니지 각지의 로마 도시와 마찬가지로 올리브였습니다. 유적 곳곳에는 기름을 짜던 돌절구와 압착기의 흔적이 남아, 신전의 웅장함 뒤편에 땅에 발을 붙인 경제가 있었음을 일러 줍니다.
신전 다음의 시대, 세례당의 모자이크
스베이틀라에는 로마 이후의 층도 짙게 쌓여 있습니다. 도시 곳곳에 초기 기독교의 바실리카가 세워졌고, 그중 비탈리스 세례당에는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된 세례반이 남아 있습니다. 신전의 기둥이 하늘을 향하던 자리에서, 사람들은 이윽고 다른 신에게 세례를 주고 있었던 셈입니다. 돌 하나에 시대의 교체가 새겨져 있습니다.
신전의 기둥, 기독교의 세례당, 그리고 제국 교체의 기억 — 스베이틀라에서는 세 시대가 하나의 평원에 겹쳐 있습니다.
647년, 이 평원에서 시대가 갈렸다
그리고 서기 647년, 이 도시는 한 역사적 전환점의 무대가 됩니다. 비잔틴 제국의 총독 그레고리우스가 이곳에서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아랍·무슬림 군대와의 첫 대규모 전투에 나섰다가 패한 것입니다. 이 전투는 이프리키야 — 오늘날 튀니지 일대 — 에서 벌어진 아랍·이슬람 세력의 첫 대전으로 기록됩니다.
로마와 비잔틴의 북아프리카가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분기점에, 스베이틀라가 함께 있었습니다. 지금은 조용한 평원이지만, 이 돌들은 한 세계가 저물고 다른 세계가 열리던 순간을 지켜본 목격자입니다.
찾는 이가 적어 더 깊은 곳
스베이틀라의 미덕은 고요함입니다. 엘 젬이나 카르타고만큼 알려지지 않은 만큼, 단체 관광객의 모습도 드뭅니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 무렵이면 세 신전을 거의 독차지하는 시간대도 낯설지 않습니다. 유적은 거의 평탄해, 포럼을 중심으로 느긋하게 걸어 한 시간 남짓. 그늘이 적으니 봄과 가을이 가장 지내기 좋고, 여름이라면 이른 아침의 서늘한 공기를 권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세 신전이 왜 특별한가요?
보통 로마 도시에서는 유피테르·유노·미네르바를 하나의 신전에 함께 모십니다. 스베이틀라에서는 저마다 독립된 신전을 세워 세 채를 나란히 두었는데, 이 형태는 로마 세계에서도 드뭅니다.
647년의 전투는 무엇인가요?
비잔틴 총독 그레고리우스가 이곳에서 황제를 칭하고 아랍·무슬림 군대와 맞섰다가 패한 전투로, 이프리키야에서 벌어진 아랍·이슬람 세력의 첫 대규모 전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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